2009년 04월 05일
난징대학살 - 일본군의 100인 목베기 경쟁
고등학교 때 "논픽션 南京大虐殺" (박옥상)이란 책을 보고 난징대학살의 일정정도 면모를 알게되었죠.
미안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한국의 피압박과 한국민의 학살사실은 다루고,
또 동북아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소개할 때 주로 마루타 같은 생체실험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난징대학살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거는 드물어요.
저도 말로만 듣고 있다가 고등학교때 겨우 좀 알게 되었어요.
요새는 중국의 영행력이 커진 덕분인지, 하여튼 이 대학살이 많이 소개되는 편이더군요.
다른 반인도적 전쟁범죄처럼 여튼 근래에 들어서 좀 조명을 받더군요.
이 난징대학살의 반인도성, 왜구들의 반인도성을 증언해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100인 목베기 경쟁, 혹 100인 참수 경쟁이라는 겁니다.
"목베기 경쟁" 혹은 "100인 참수"를 검색어로 인터넷을 검색해보시면
많은 자료가 나올 껍니다.
(위키의 사진입니다)

(표제) 100인 목 베기 "기록초과" 무카이 106-105 노다/ 두 소위 또 연장전
난징에 도착하기까지 "100인 목 베기 경쟁"의 진기한 경쟁을 시작한 전례의 카타기리 부대의 용사 무카이 토시아키, 노다 다케시(마마) 두 소위는 10일의 자금산(紫金山, 쯔진산) 공략전의 혼잡 중에 106대 105의 기록을 세웠다, 10일 정오, 두 소위는 예상한대로 칼날이 손상된 일본도를 한 손에 들고 대면했다
노다 " 나는 105명을 베었는데, 당신은?" 무카이 "나는 106명이다!"……두 소위는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언제 누가 먼저 100명을 베었는지는 불문에 붙였고, 종국에는 "나와의 게임은 무승부다. 하지만 다시 150명으로 하는 것이 어때?" 라고 금세 의견이 일치해, 11일부터 드디어 150명 목베기 시합이 시작되었다. 11일 오후 중국 남경에 있는 손문의 능묘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자금산에서 패잔병사냥에 한참인 무카이 소위가 '100인 목 베기 게임, 무승부'의 전말을 이야기한 후,
"모르는 사이 양쪽 모두가 백 명이 넘어 있어, 재미 있었다. 나의 관손육(關孫六) 칼날이 손상된 것은 중국인 한 명을 벨 때, 중국의 대나무로 만들어져 비교적 쉽게 칼날이 상할 수 있는 철모를 함께 베었기 때문이다. 싸움이 끝나면 이 일본도는 귀사에 기증한다고 약속했다......"
(윗글은 "독도수호지기" http://dokdo.naezip.net/nanking/nanking09.htm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위키에도 있고..
ko.wikipedia.org/wiki/100인_참수_경쟁
MBC에서도 한번 특집 한 적 있고...
www.imbc.com/broad/tv/culture/world/nanjing/info/info03.html
난징대학살 때 또 유명한것이
강간 또는 강간후 살해, 음부훼손이었죠.
난징 부근에
여인들의 미모로 유명한 소주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난징에서도 강간과 살해가 극을 이뤘지만,
이 소주에서는 소주가 여인들의 미모로 유명한 도시라는 점 때문인지,
더욱 극악해졌죠.
이건 찾아보세요.
차마 사진을 싫을 수 없어서...
미안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한국의 피압박과 한국민의 학살사실은 다루고,
또 동북아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소개할 때 주로 마루타 같은 생체실험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난징대학살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거는 드물어요.
저도 말로만 듣고 있다가 고등학교때 겨우 좀 알게 되었어요.
요새는 중국의 영행력이 커진 덕분인지, 하여튼 이 대학살이 많이 소개되는 편이더군요.
다른 반인도적 전쟁범죄처럼 여튼 근래에 들어서 좀 조명을 받더군요.
이 난징대학살의 반인도성, 왜구들의 반인도성을 증언해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100인 목베기 경쟁, 혹 100인 참수 경쟁이라는 겁니다.
"목베기 경쟁" 혹은 "100인 참수"를 검색어로 인터넷을 검색해보시면
많은 자료가 나올 껍니다.
(위키의 사진입니다)
(표제) 100인 목 베기 "기록초과" 무카이 106-105 노다/ 두 소위 또 연장전
난징에 도착하기까지 "100인 목 베기 경쟁"의 진기한 경쟁을 시작한 전례의 카타기리 부대의 용사 무카이 토시아키, 노다 다케시(마마) 두 소위는 10일의 자금산(紫金山, 쯔진산) 공략전의 혼잡 중에 106대 105의 기록을 세웠다, 10일 정오, 두 소위는 예상한대로 칼날이 손상된 일본도를 한 손에 들고 대면했다
노다 " 나는 105명을 베었는데, 당신은?" 무카이 "나는 106명이다!"……두 소위는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언제 누가 먼저 100명을 베었는지는 불문에 붙였고, 종국에는 "나와의 게임은 무승부다. 하지만 다시 150명으로 하는 것이 어때?" 라고 금세 의견이 일치해, 11일부터 드디어 150명 목베기 시합이 시작되었다. 11일 오후 중국 남경에 있는 손문의 능묘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자금산에서 패잔병사냥에 한참인 무카이 소위가 '100인 목 베기 게임, 무승부'의 전말을 이야기한 후,
"모르는 사이 양쪽 모두가 백 명이 넘어 있어, 재미 있었다. 나의 관손육(關孫六) 칼날이 손상된 것은 중국인 한 명을 벨 때, 중국의 대나무로 만들어져 비교적 쉽게 칼날이 상할 수 있는 철모를 함께 베었기 때문이다. 싸움이 끝나면 이 일본도는 귀사에 기증한다고 약속했다......"
(윗글은 "독도수호지기" http://dokdo.naezip.net/nanking/nanking09.htm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위키에도 있고..
ko.wikipedia.org/wiki/100인_참수_경쟁
MBC에서도 한번 특집 한 적 있고...
www.imbc.com/broad/tv/culture/world/nanjing/info/info03.html
난징대학살 때 또 유명한것이
강간 또는 강간후 살해, 음부훼손이었죠.
난징 부근에
여인들의 미모로 유명한 소주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난징에서도 강간과 살해가 극을 이뤘지만,
이 소주에서는 소주가 여인들의 미모로 유명한 도시라는 점 때문인지,
더욱 극악해졌죠.
이건 찾아보세요.
차마 사진을 싫을 수 없어서...
# by | 2009/04/05 07:08 | 역사자료 | 트랙백 | 덧글(5)





다른 분들도 참고하시려면 단행본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국가와 민중의 책임 ",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 정도가 있고,
논문은 KSI KISS에 들어가셔서 "관동대지진"으로 검색해보면 한 열건내외 논문이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