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08일
화랑세기 위서논쟁 정리..
新 사소한 발견 15 - 화랑세기를 보다가
위서논쟁의 정리는 내가 할 수준이 아니고,
그냥 책에 있는거 베끼는 수준이다.
뭐 짧으니까 인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봄.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위서인지 아닌지 반반이다.
소위 위서가 아니라는 진본이라는 논거 중에
제일 합리적으로 보이는게 "화랑세기"에만 보이는 향가이다.
이 향가를 조작해냈다면, 정말 양주동 선생이 혀깨물고 다시 무덤속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지.
그치만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면, 화랑세기의 인용은 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본다.
다음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pp 90~91에 실린 부분이다.
숫자는 해당 논문을 가리킨다.
(모든 한문으로 한글로 바꿨음)
...(중략) 마지막으로 지난 20여 년간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대두되었던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논란에 대해서 살펴보면,289
처음 그 존재가 알려진 1989년에는 진본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290과 위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는견해 291가 양립하였다. 그 후 전자의 입장에 선 논고들이 몇 편 나오다가, 292,293,294 1995년에 이르러 또다른 필사본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는 한편, 일제시기 일본의 궁내성 서릉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박창화라는 인물에 의한 위작이라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하였다. 295
그러나 진본설에 서 있던 연구자들은 위작설에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사료로서 적극 이용하는 과감성을 보였으며, 296,297,298 더욱 철저한 사료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299 진본설이 불식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흔히 '모본'으로 불리는 새로운 필사본의 내용 가운데 향가가 한 수 들어 있었기 때문인데, 위작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화랑세기가 일제시기에 조작된 것이라면 향가가 실려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본 '화랑세기'가 신라 중대의 역사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충실하는 전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계속 이어졌고, 300, 301, 위작설이 재차 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02 진본으로 밎는 입장에서 수권의 저서가 출간되었으며 303, 304, 305, 306, 307 따로 몇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308,309
한편 계량문헌학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문제를 따져본 이색적인 논문도 나왔고 310, 311 위작설의 입장에 서되 그동안 통설과는 달리 1989년에 처음 알려진 '발췌본'이 먼저 만들어지고 1995년에 소개된 '모본'이 뒤에 만들어졌다고 보면서 둘 다 박창화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는 논문도 나온 바 있다. 312, 313, 314
2003년에는 일본근현대사 전공자에 의해 박창화가 1920년대 후반에 발표한 신라사 관련 논문이 소개되었고, 315 이를 계기로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이 다시 불타올랐다.316, 317, 318 현재는 상당수 연구자들이 진본설의 입장에 서서 논물을 발표하고 있으며, 319, 320, 321, 322, 323, 324, 325, 326 위작설에 동조하는 연구자들은 더 이상의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89. 권덕영, 2000, '필사본 화랑세기 진위 논쟁 10년', 한국학보 99, 일지사
290. 이재호, 1989, '화랑세기의 사료차 가치 - 최근 발견된 필사본에 대한 검토-', 정신문화연구 36, 정문연
291, 권덕영, 1989,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23, 역사학회
292, 정재훈, 1990, '새로 발견된 화랑세기에서 본 화랑사', 창산김정기박사화갑기념논총
293, 이종학, 1991,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평가', 경희사학 16.17합집, 경희대사학회
2003,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294, 이종욱, 1995, '화랑세기 연구 서설 - 사서로서의 신빙성 확인을 중심으로-', 역사학보 146, 역사학회
295, 노태돈, 1995,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 역사학보 147, 역사학회
296, 이종욱, 1995, '화랑세기에 나타나는 진골정통과 대원신통' 한국상고사학보 18, 한국상고사학회
297, 이종욱, 1996, '화랑세기를 통하여 본 신라 화랑도의 기원과 설치', "화랑문화의 신연구",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298, 윤영옥, 1996, '화랑세기의 문맥적 검토 - 위화랑 3대에 대해-', "화랑문화의 신연구",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299, 이강래, 1996,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 "화랑문화의 신연구",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300, 김학성, 1996, '필사본 화랑세기와 향가의 새로운 이해', "성곡논총 27권 1호, 성곡학술문화재단
301, 이종욱, 1997, '화랑세기의 신빙성과 그 저술에 관한 고찰', "한국사연구" 97, 한국사연구회
302, 노태돈, 1997,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본인가', "한국사연구" 99,100, 한국사연구회
303, 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1999, "화랑세기 - 신라인의 신라 이야기-", 소나무
304, 이종욱, 2000,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305, 김태식, 2002,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영사
306, 이종욱, 2003, "화랑", 휴머니스트
307, 이종학 외, 2003,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08, 이종욱, 2000, '풍월주의 임명과 퇴임', "동아연구" 39, 서강대 동아연구소
309, 이영훈, 2002, '화랑세기에서의 노와 비 - 삼국시대 신분제 검토 -', "역사학보" 176, 역사학회
310, 이근우, 2001, '필사본 화랑세기 진위 감정 시론', "경주문화연구" 4, 경주대 경주문화연구소
311, 이근우, 2004, '화랑세기에 대한 통계적 접근', "지역과 역사" 15, 부경역사연구소
312, 김기흥, 2003, '화랑세기 두 사본의 성격', "역사학보" 178, 역사학회
313, 김기흥, 2003, '필사본 화랑세기와 관련된 기초적 문제들', "건대사학" 10, 건국대 사학회
314, 김기흥, 2003, '화랑 설치에 관란 제 사서의 기사 검토 - 김대문의 화랑세기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역사교육" 88, 역사교육연구회
315, 박환무, 2003, '박창화의 '신라사에 대하여'', "역사비평" 62, 역사문제연구소
316, 김태식, 2003, '박창화와 화랑세기', "역사비평" 62, 역사문제연구소
317, 윤선태, 2003, '필사본 화랑세기 진위논쟁에 뛰어들며', "역사비평" 62, 역사문제연구소
318, 김태식, 2003, '화랑세기 수록 향가 조작설 비판' "역사비평" 63, 역사문제연구소
319, 이도흠, 2003,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국문학적 고창',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0, 정운용, 2003,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해 본 신라 화랑제의 성립',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1, 조범환, 2003,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하여 본 진평왕의 왕위계승',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2, 하정룡, 2003, '필사본 화랑세기에 대한 서지학적 일고창',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3, 김희만, 2003,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학사',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4, 김태식, 2003, '사금갑 설화의 역사적 이해 - '화랑세기' 관련 기록과의 대비 검토-', "민속학연구" 12, 국립민속박물관
325, 박문옥, 2004, '화랑세기로 본 김유신의 세계, 인통과 혼인 - 신라 공품제하에서의 지위-', "한국상고사학보" 43, 한국상고사학회
326, 김태식, 2006, '두 갈문왕(기보, 습보), 같은 여인(조생), 그리고 한 아들(지증) - 또 하나의 '화랑세기, '상장돈장' 검증을 위한 시론', "충북사학" 16, 충북대 사학회
위서논쟁의 정리는 내가 할 수준이 아니고,
그냥 책에 있는거 베끼는 수준이다.
뭐 짧으니까 인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봄.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위서인지 아닌지 반반이다.
소위 위서가 아니라는 진본이라는 논거 중에
제일 합리적으로 보이는게 "화랑세기"에만 보이는 향가이다.
이 향가를 조작해냈다면, 정말 양주동 선생이 혀깨물고 다시 무덤속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지.
그치만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면, 화랑세기의 인용은 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본다.
다음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pp 90~91에 실린 부분이다.
숫자는 해당 논문을 가리킨다.
(모든 한문으로 한글로 바꿨음)
...(중략) 마지막으로 지난 20여 년간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대두되었던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논란에 대해서 살펴보면,289
처음 그 존재가 알려진 1989년에는 진본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290과 위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는견해 291가 양립하였다. 그 후 전자의 입장에 선 논고들이 몇 편 나오다가, 292,293,294 1995년에 이르러 또다른 필사본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는 한편, 일제시기 일본의 궁내성 서릉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박창화라는 인물에 의한 위작이라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하였다. 295
그러나 진본설에 서 있던 연구자들은 위작설에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사료로서 적극 이용하는 과감성을 보였으며, 296,297,298 더욱 철저한 사료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299 진본설이 불식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흔히 '모본'으로 불리는 새로운 필사본의 내용 가운데 향가가 한 수 들어 있었기 때문인데, 위작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화랑세기가 일제시기에 조작된 것이라면 향가가 실려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본 '화랑세기'가 신라 중대의 역사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충실하는 전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계속 이어졌고, 300, 301, 위작설이 재차 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02 진본으로 밎는 입장에서 수권의 저서가 출간되었으며 303, 304, 305, 306, 307 따로 몇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308,309
한편 계량문헌학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문제를 따져본 이색적인 논문도 나왔고 310, 311 위작설의 입장에 서되 그동안 통설과는 달리 1989년에 처음 알려진 '발췌본'이 먼저 만들어지고 1995년에 소개된 '모본'이 뒤에 만들어졌다고 보면서 둘 다 박창화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는 논문도 나온 바 있다. 312, 313, 314
2003년에는 일본근현대사 전공자에 의해 박창화가 1920년대 후반에 발표한 신라사 관련 논문이 소개되었고, 315 이를 계기로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이 다시 불타올랐다.316, 317, 318 현재는 상당수 연구자들이 진본설의 입장에 서서 논물을 발표하고 있으며, 319, 320, 321, 322, 323, 324, 325, 326 위작설에 동조하는 연구자들은 더 이상의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89. 권덕영, 2000, '필사본 화랑세기 진위 논쟁 10년', 한국학보 99, 일지사
290. 이재호, 1989, '화랑세기의 사료차 가치 - 최근 발견된 필사본에 대한 검토-', 정신문화연구 36, 정문연
291, 권덕영, 1989,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23, 역사학회
292, 정재훈, 1990, '새로 발견된 화랑세기에서 본 화랑사', 창산김정기박사화갑기념논총
293, 이종학, 1991,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평가', 경희사학 16.17합집, 경희대사학회
2003,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294, 이종욱, 1995, '화랑세기 연구 서설 - 사서로서의 신빙성 확인을 중심으로-', 역사학보 146, 역사학회
295, 노태돈, 1995,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 역사학보 147, 역사학회
296, 이종욱, 1995, '화랑세기에 나타나는 진골정통과 대원신통' 한국상고사학보 18, 한국상고사학회
297, 이종욱, 1996, '화랑세기를 통하여 본 신라 화랑도의 기원과 설치', "화랑문화의 신연구",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298, 윤영옥, 1996, '화랑세기의 문맥적 검토 - 위화랑 3대에 대해-', "화랑문화의 신연구",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299, 이강래, 1996,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 "화랑문화의 신연구",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300, 김학성, 1996, '필사본 화랑세기와 향가의 새로운 이해', "성곡논총 27권 1호, 성곡학술문화재단
301, 이종욱, 1997, '화랑세기의 신빙성과 그 저술에 관한 고찰', "한국사연구" 97, 한국사연구회
302, 노태돈, 1997, '필사본 화랑세기는 진본인가', "한국사연구" 99,100, 한국사연구회
303, 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1999, "화랑세기 - 신라인의 신라 이야기-", 소나무
304, 이종욱, 2000,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305, 김태식, 2002,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영사
306, 이종욱, 2003, "화랑", 휴머니스트
307, 이종학 외, 2003,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08, 이종욱, 2000, '풍월주의 임명과 퇴임', "동아연구" 39, 서강대 동아연구소
309, 이영훈, 2002, '화랑세기에서의 노와 비 - 삼국시대 신분제 검토 -', "역사학보" 176, 역사학회
310, 이근우, 2001, '필사본 화랑세기 진위 감정 시론', "경주문화연구" 4, 경주대 경주문화연구소
311, 이근우, 2004, '화랑세기에 대한 통계적 접근', "지역과 역사" 15, 부경역사연구소
312, 김기흥, 2003, '화랑세기 두 사본의 성격', "역사학보" 178, 역사학회
313, 김기흥, 2003, '필사본 화랑세기와 관련된 기초적 문제들', "건대사학" 10, 건국대 사학회
314, 김기흥, 2003, '화랑 설치에 관란 제 사서의 기사 검토 - 김대문의 화랑세기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역사교육" 88, 역사교육연구회
315, 박환무, 2003, '박창화의 '신라사에 대하여'', "역사비평" 62, 역사문제연구소
316, 김태식, 2003, '박창화와 화랑세기', "역사비평" 62, 역사문제연구소
317, 윤선태, 2003, '필사본 화랑세기 진위논쟁에 뛰어들며', "역사비평" 62, 역사문제연구소
318, 김태식, 2003, '화랑세기 수록 향가 조작설 비판' "역사비평" 63, 역사문제연구소
319, 이도흠, 2003,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국문학적 고창',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0, 정운용, 2003,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해 본 신라 화랑제의 성립',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1, 조범환, 2003,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하여 본 진평왕의 왕위계승',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2, 하정룡, 2003, '필사본 화랑세기에 대한 서지학적 일고창',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3, 김희만, 2003,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학사',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주류성
324, 김태식, 2003, '사금갑 설화의 역사적 이해 - '화랑세기' 관련 기록과의 대비 검토-', "민속학연구" 12, 국립민속박물관
325, 박문옥, 2004, '화랑세기로 본 김유신의 세계, 인통과 혼인 - 신라 공품제하에서의 지위-', "한국상고사학보" 43, 한국상고사학회
326, 김태식, 2006, '두 갈문왕(기보, 습보), 같은 여인(조생), 그리고 한 아들(지증) - 또 하나의 '화랑세기, '상장돈장' 검증을 위한 시론', "충북사학" 16, 충북대 사학회
# by | 2009/06/08 23:18 | 역사자료 | 트랙백 | 덧글(4)





신발견 박창화의 <화랑세기> 진본과 '향가' 1수, 박남수, 동국사학 제43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