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학적 규원사화의 가치?

환장고기류(보면 환장한다고 환장이다. ㅎ) 위서 중에 어느정도 사료적 가치를 평가해 줄수 있다고 보는게 규원사화이다.
나도 마지막으로 읽은 때가 오래되었고, 원문이 아닌 해석본을 읽었기 때문에 직접 말하기가 껄끄럽지만,
그래도 그나마 서지학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것은 규원사화라고 본다.

규원사화의 위서론이나 진본론 외에,
조선 중기이후 반존주적 내지 도가적 계열의 사서로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고,
또 그런 인식을 담고 있는 사서로서 가능성을 평가하는 입장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사서외에,
소위 한장고기나 규원사화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다른 고기(古記)류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 고기를 짜집기해서 지들의 정치적 목적에 사용한다는 것과는 별개다)

그렇게 전승된 고기류의 상존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면,
(에를 들어 발해유민이 전승했다는
일부 고기류들이 이 위서들을 조작할 때 참고되거나 그대로 산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선택적 취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특히 규원사화에 주목하는 것은,
규원사화의 성립연대가 적어도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아도 숙종 2년(1675)으로
다른 위작 사서들과 달리 성립연대가 이르고,
또 전형적인 위작의 근거로 여겨지는 근대적 용어들의 남발같은 게 비교적(비교적이다) 적기 때문이다.

물론 위서론으로 보는 입장의 비판의 근거들이 훨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긴 하다.
그래서 이 근거를 바탕으로 위서론으로 판단하는 것도 타당하다.

내 말은 아까 말했듯,
그런 위서/위작의 요소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고(물론 다른 위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다는 말이다)
현전하지 않는 다른 고기류들의 산입 가능서을 마냥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위서론의 근거가 제일 정리 잘되어 있는 것은
박광용 "대종교관련 문헌 위작많다", 역비, 12, 1990 에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위서론의 반박(?)론은
임채우 "선도사서 규원사화 해제", 선도문화, 6, 2009에 어느정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제일 궁금한 것은,
"규원사화"의 서책으로서 서지학적 근거와 해제 부분이 될 텐데,
글쎄 이 부분이 딱 부러지지 않는다.

나름 찾아봤는데,

중앙도서관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지정보가 정도가 나온다.

여기의 서지 정보는 보면 알겠지만,
규원사화의 책 내용 그대로이다.(뭐 서지정보가 그런거지)

예전에 규장각에서 규원사화의 서지정보를 찾아왔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하는데,
오늘 검색해보니 규장각에서는 규원사화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이건 또 원 일이래...)

이 서지정보는 그렇다 쳐도 해제 부분이 중요한데,
해제는 천혜봉이 쓴 것이고, 상당부분 사료로서 가치를 어느 정도 긍정하는 편이다.

규원사화가 진본이라는 입장의 임채우는
서지학적으로 분명한 진본이라는 근거를 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 규원사화 의 진위논쟁은 형식적으로는 불필요한 일이다. 왜
냐하면 이미 서지학 및 금석학 분야 전문가의 감정과 심의과정을 거
쳤기 때문이다. 1945년 구입한 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인 규원사화 원
본에 대하여 1972년 11월 3일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의원인 李家
源․孫寶基․任昌淳 3인이 조선 중기에 씌여진 진본임을 확인하여
인증서를 작성한 바 있다.
37) 이외에 서지학자인 장지연도 종이의 질

과 글씨 및 제호를 표지에 바로 쓴 정황 등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에
쓰여졌다고 확인한 바 있다.38)

37) 이 내용은 1989년 한배달 6호를 통해 확인 공개되었다. 고평석, 한배달 6
호, 1989.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3인의 심의위원은 고서 감정에 있
선도사서 규원사화 해제․임채우 145

38) 영인 규원사화 , 한뿌리, 1990, 발문 참조."

진짜 궁금한 것은,
위 3인의 심의결과 내용인데, 내 검색능력으로는 찾을 길이 없다.

by moduru | 2009/11/02 06:08 | 역사구라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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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2 12:32
손보기 선생님이 규원사화가 진서임을 인정하셨다고요? -_-;;
Commented by moduru at 2009/11/02 12:59
저도 그건 알 길이 없고, "임채우"란 사람의 논문에 그렇게 나와있더라고요. 저도 그 심의결과보고서 좀 보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02 13:21
개인적으로 신뢰할만한 ***님의 전언에 의하면 국립중앙도서관측에서는 당시 심의결과가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고 합니다...만.

문제는 세 분이서 그다지 정확한 심의를 한 것 같지 않습니다. (...OTL)
Commented by moduru at 2009/11/02 13:24
뭐 심의결과가 진본이라고 해서, 책 내용도 진실하다,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Fact)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별개겠지요.

그렇지만, 서지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책 내용대로 17세기의 저작물이면, 일단 19/20세기 위작설의 근거는 한 축이 무너지는 셈이겠네요.
그래서 그 심의결과, 특히 관련 보고서가 분명히 있을 껀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02 13:36
저도 국립중앙도서관측에 문의했었는데 메일로 보내준다고 하고서는 이후에 그대로 씹었습죠. (...)

위작설의 한 축이 무너졌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위작설은 저 심의 이후에 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문헌고증으로 접근한 조XX 교수가 규원사화가 훨씬 후대의 오류를 답습한 것을 발견하기도 했고.

이런 오류가 하나면 어떻게 슬그머니 피해가겠는데, 저같은 엉터리가 찾기에도 계속 오류가 보여서 역시 세 분이 삽을 펐다는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설명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1924년 후반 ~ 1925년 중반 사이에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moduru at 2009/11/02 13:43
위작설이 심의 이후에 나왔다고 해도, 서지학적으로 반박을 못한다면, 아니 별 이견이 없다면
현재로서는 그 서지학적 정보를 일단은 신뢰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그 보고서를 제대로 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다시 심의를 해도 좋고...
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02 14:02
아, 위서론 자체가 아예 그 심의를 무시하고 들어갑니다.
조XX 교수에 의하면
'현전하는 규원사화의 판본 6종은 모두 근대의 필사본 혹은 등사본이다' (...)

문제는 이러면서 별다른 근거를 밝히지 않아서, 진서론자 측에서는 '조XX이 진본을 못봤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거다 !!' 라고 하는 것입죠.
Commented by moduru at 2009/11/02 14:06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Commented by blue ribbon at 2009/11/02 21:21
위작인지 사실인지 구분이 안되는가 모양입니다.
필사본
등사본...
원본이 없다는 겁니까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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