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인양 유물 관련 기사.

800년전 타임캡슐 고려시대 죽간 발굴var url = document.URL;var pos = url.indexOf("AKR");var nid = url.substr(pos,20);var pos2 = url.indexOf("audio=");var nid2 = url.substr(pos2+6,1);if (nid2 == 'Y'){document.write("");document.write(" 오디오듣기");}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09/11/04/0906000000AKR20091104040300005.HTML?audio=Y


대충 이런 기사였는데,
오늘 새로운 소식이 나왔군요.

"침몰 고려선박 적재품은 개인 식읍 수입"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09/11/05/0906000000AKR20091105051900005.HTML?audio=Y


공부가 되겠네요.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이, 이것이 국가가 사여하든, 무인정권기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토지점탈의 결과였던,
과연 전출이 식읍의 소작이라고 해석할 수 있느냐 하는게....

위 기사에도 영훈이 논문을 인용해 나와 있는데,

"'전출'이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이 실제 토지 주인에게 소출 중 일정 부분을 받친 수입"라고 정의해 놨습니다.

 

이 사실로 볼 때, 봉작받은 식읍이라는 사실이 좀 의문이네요.

기록이 미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대장군 김순영(金純永)이 봉작과 봉읍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고,

전출이 현재의 "소작" 정도의 의미라면, 굳이 식읍에서 바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점유한 장원에서 바치는 "소작료"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전출을 바친 지역이

"죽산현(竹山縣.해남), 회진현(會津縣.나주), 수령현(遂寧縣.장흥)"이라고 나와 있듯,

하나의 식읍이라기 보기엔, 너무 산재해 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보통 식읍이라면 특정 지역에 한정될 것인데, 이렇게 여러 지역에 식읍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네요.

 

차라리 개인 사유지인 장원이라면 특정 지역에 국한될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김순영의 사유지인 장원에서 바치는 수입이 아닌가 라고

짱구 굴려 봅니다.

 

 

추가로.

"대명률직해"는 찾아보지 못했고,

당률소의에는 전출이라는 형식이 없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출이 나오는데, 전조(田租)로 해석하는 군요.

물론, 대명률직해의 해당 구절을 보는게 제일 정확하겠지만.....

by moduru | 2009/11/06 09:46 | 역사구라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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