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박정희군의 혈서

박정희 전대통령 만주군 ‘혈서(血書)지원’ 사실로 밝혀져
http://www.minjok.or.kr/kimson/home/minjok/bbs.php?id=news&q=view&uid=2024




아 감동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 자료구나.

by moduru | 2009/11/05 14:39 | 역사자료 | 트랙백(1) | 덧글(2)

삼국지에서 칠군(七軍)

우금과 함께 강물에 떠내려간 칠군은?

오늘 마침 회의도 끝나고 해서 보다,
삼국지를 번역하다 한번 본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봤습니다.

위서 조엄전의 구절입니다.

太祖征荊州,以儼領章陵太守,徙都督護軍,護于禁﹑張遼﹑張郃﹑朱靈﹑李典﹑路招﹑馮楷七軍

태조(조조)가 형주를 정벌할 때, 조엄으로 장릉태수를 영솔하게 하다, 도독호군으로 옮겨 우금, 장료, 장합, 주령, 이전, 노초, 풍해의 칠군을 호군하게 했다.


칠군의 이 7장군에게 소속된 군대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실제 우금전에도 "禁所督
七軍" "우금이 지휘(督)하던 칠군"이라 하였으니,
7군이 조위의 별도 군사조직이라기 보다, 기존 7장수가 각자 지휘하던 군대를
관우 공격시 우금에게 임시로 지휘하도록 하였던 걸로 봐야할 꺼 같습니다.

그런데, 꼭 칠군이 7 장수가 지휘하던 군대로 보지 않을 수도 있는게,
삼국시대와 가까운 서진의 무제 사마염 제위시 또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泰始元年, ......, 置中軍將軍,以統宿七軍
태시 원년... 중군장군을 두어 칠군을 지휘하여 숙위토록 하였다"

이걸 보면, 후대엔 하나의 편제같이 되어버린 듯 하기도 한데....

이건 참고..

((남)송서 백관지.

 領軍將軍,一人.掌內軍.漢有南北軍,衛京師.武帝置中壘校尉,掌北軍營.光武省中壘校尉,置北軍中候,監五校營.魏武為丞相,相府自置領軍,非漢官也.文帝即魏王位,魏始置領軍,主五校、中壘、武衛三營.晉武帝初省,使中軍將軍羊祜統二衛前後左右驍騎七軍營兵,即領軍之任也

영군장군은 1인이며, 내군을 관장한다. 한나라때에 남북군이 있어, 경사를 호위했다. 무제때 중루교위를 두었서, 북군의 군영을 관장하게 했다. (후한) 광무제 때 중루교위를 없애고, 북군중후를 두어 오교영을 감호하게 하였다. 위무제가 승상이 되었을 때, 승상부 자체에 영군을 두었지만, 한의 관직은 아니다. (위)문제가 위왕의 자리에 즉위하였을 때, 위가 비로소 영군을 두고, 오교, 중루, 무위의 3영을 주관하게 하였다. 진 무제 초에 없앴다가 중군장군 양호에 게 2위, 전/후/좌/우(위), 효기 7군의 군영병을 통솔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곧 영군의 직임이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헤헤)

by moduru | 2009/11/04 17:47 | 역사구라 | 트랙백 | 덧글(2)

팩트로서 만주국, 만주군


[만주국]

- 만주사변 후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에 세운 괴뢰국가
만주를 침략한 일본 관동군은 1932년 1월 장쉐량[張學良]의 반만항일의 거점인 진저우[錦州]를 점령한 후, 2월 '신국가건설막료회의'를 개최해 만주국 건국 구상을 구체화
-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이었으며, 경제면에서도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전 철도를 경영하고 닛산[日産] 콘체른이 진출해 개발사업을 독점하는 등 일본이 실세를 장악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B&i=136014



- 실제로는 관동군이 지배하는 일본제국의 괴뢰국
- 실제 통치에 있어서는 1931년만주사변에 의해서 이 지역을 점령한 일본제국 육군의 주력부대 중 하나였던 관동군의 무력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로서 사실상 일본제국의 식민지
-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 경제는 일본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맡았다.

만주국의 기념일, 명절
2월11일기원절(紀元節)일본 건국 축하일
4월29일천장절(天長節)일본 천황 탄생 축하일

http://ko.wikipedia.org/wiki/%EB%A7%8C%EC%A3%BC%EA%B5%AD



[만주군]

- 창립 당시부터 일본인이 고문을 맡아 조종하였고, 군대의 이동과 연습, 장비 교체, 인사 이동과 같은 주요 결정에 관동군의 승인을 받는 지휘체계

http://ko.wikipedia.org/wiki/%EB%A7%8C%EC%A3%BC%EA%B5%AD_%EC%9C%A1%EA%B5%B0


by moduru | 2009/11/03 17:27 | 역사구라 | 트랙백 | 덧글(1)

꽤 주목해야 봐야 할 기사 - "중앙박물관, 고조선실 신설"

중앙博 고조선실 신설..역사 흐름 한눈에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c%9b%90%ec%82%bc%ea%b5%ad&contents_id=AKR20091028161100005


기사에 나온대로 이런 변화는 상당히 주목해 봐야 할 일이다.

기사에도 지적했듯, 원삼국이란 용어 자체가 그야말로 별생각없이 나태한 단어이다.
이 원삼국이란 용어를 버젓이 역사적 시대구분에 차용한 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원삼국이란 말 속에는,
삼국이전에 고대 국가는 별로 국가-State로서 단계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잘해야 치프덤 단계였을 것이고,
그래서 주목할 바 없으며,
제대로 된 고대국가의 전개는 삼국의 정립, 그것도 소위 고대국가의 형성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논리에 갖다붙여 구분하게 된 것이다.

덕택에, 수많은 삼한의 국가들의 존재는 미미하고 저열한 단계이며, 별로 고찰해 볼 것도 없는 것들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한국사의 북부와 남부에서 기원전부터 시작해 못해도 5세기까지도 강력한 역사적 영향력을 끼친 부여와 가야도 있는 둥 마는 둥의 취급을 받았고,
당연히 고조선은 여전히 국가나 신화냐 따위의 한심한 논란의 범주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by moduru | 2009/11/03 13:29 | 역사구라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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